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버트 노직 (문단 편집) == 생애 == 1938년, 러시아 출신 유태계 이민자의 아들로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학창 시절에는 사회주의 계열의 청년단체에 가입해 활동하였고,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있을 때는 산업민주주의 학생연맹 지부를 창설하는 등의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25세 때인 1963년에는 [[프린스턴 대학교]] 대학원에서 [[칼 구스타프 헴펠|칼 헴펠]]의 지도를 받아 “The Normative Theory of Individual Choice”라는 논문으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특히 대학원 재학 시절에는 논리적이고 날카로운 안목으로 기존의 철학적 관점들을 꿰뚫어 학계의 주목을 받았고, 1969년, 30세 때는 하버드대학교 철학과의 정교수가 되었다. 1971년 [[존 롤스]]의 『정의론』이 발표되자 이에 대항하여 1974년 《무정부, 국가, 그리고 유토피아》를 써서 '경제적 자유주의'를 외쳤으며, '평등적 자유주의-경제적 자유주의 논쟁'에서 경제적 자유주의 이론을 대표하는 철학자로 이름을 떨쳤다. 이는 자유지상주의 이론에 토대를 형성하였다. 이후 노직의 '[[야경국가주의|최소정부론]]'은 수많은 철학자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노직은 비판에 대해 구체적인 반박 논문이나 책을 내지 않았다.[* Anarchy, State, and Utopia has generated an enormous secondary literature, much of it critical. Unlike Rawls, however, Nozick did not attempt to defend or revise his political views in published work.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Robert-Nozick/The-entitlement-theory-of-justice|#]]] 그는 5년 동안만 정치 철학을 했으며, 이후 정치 철학을 떠나 새로운 주제를 연구했다. 《철학적 설명(1981)》, 《합리성의 본질(1993)》, 마지막 저서인 《불변성: 객관적 세계의 구조(2001)》 등에서 그는 인식론, 합리적 선택 이론, 마음 철학, 윤리학 분야에서 중요한 공헌을 했다. 노직은 말년에 극단적 자유지상주의를 단념하고 무제한 상속을 견제하기 위한 몇 가지 계획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 때 자유지상주의자들로부터 '노직이 평등주의로 전향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지만, 노직 자신은 자유지상주의 노선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변명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정치 이론을 강화하고 자신의 권리 개념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인간 본성과 윤리에 대한 이론을 개발하고 싶었지만 실패했다고 말했다. 인간의 본성을 다루면서 개인적 '일상의 신성함'과 그 의미에 대한 책인, 《성찰된 삶 (1989)》에서의 그는 실망스럽게도 깊이가 부족하고 다소 감상적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 책에 언급된 많은 원칙들을 실천에 옮겼다. 죽기 7년 전, 자신에게 위암으로 6개월의 삶이 남았다고 들었을 때 그는 씩씩한 저항으로 대응했고, 자신이 소유한 육체를 엄청난 노력으로 밀어붙여 예상보다 훨씬 더 오래 장수하였다.[* In later life, Nozick renounced extreme libertarianism, and even proposed some scheme for checks on unlimited inheritance. He said he had wanted to develop a theory of human nature and ethics to bolt on to his political theory and ground his notion of rights, but had failed. Where he did tackle human nature, the personal, "the holiness of everyday life" and its meaning, in The Examined Life (1989), he was disappointingly schmaltzy. Yet he carried many of the principles mentioned in that book into practice. Told seven years ago that he had six months to live, he responded with high-spirited defiance, and pushed the body he owned to tremendous exertions - and to far greater longevity than anticipated. [[https://www.theguardian.com/news/2002/jan/26/guardianobituaries.socialsciences|#]] ] 2002년 1월 23일, 위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